전 세계 자동차 산업은 지금까지 한 세기 이상 이어져 온
내연기관 중심의 패러다임을 서서히 마무리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며,
이미 각국의 산업과 생활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제조사들은 더 이상 기존 엔진 효율 개선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전기차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지만,
충전 시간과 장거리 운행 제약, 전력 수급 문제 등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이 틈새에서 수소연료전지 기술은 또 다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소차는 연료 주입 시간이 짧고, 주행거리가 길며,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용차, 물류, 대중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배터리 무게로 인한 적재중량 손실이
치명적인 화물차와 장거리 버스 운송에서는 수소차가 전기차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미래 시나리오에서
수소차는 전기차와 함께 양대 친환경 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 시장, 정책, 인프라 등
복합적인 변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기술 혁신과 수소차 경쟁력
수소연료전지차의 핵심은 연료전지 스택이다.
수소와 산소가 전극에서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전기가 생성되고,
이 전기가 구동 모터를 회전시켜 차량을 움직인다.
이때 발생하는 부산물은 순수한 물과 열뿐이어서,
배출가스 규제가 엄격해지는 시대에 큰 장점을 가진다.
최근 10년 동안 연료전지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과거에는 내구성이 5만km 전후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16만km 이상으로 늘어나 일반 승용차의 사용 주기와 견줄 수 있다.
또한 혹한기 시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온 반응 효율을 높이는 촉매 기술이 개발되었고,
연료전지 스택의 크기를 줄여 차량 내 공간 효율성도 개선됐다.
수소 저장 탱크는 초고압(700bar) 환경에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을 적용해 경량화와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주행거리 측면에서도 기술 발전이 뚜렷하다.
최신형 수소차는 한 번 충전으로 7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며,
이는 전기차 대비 2배 가까운 수치다.
충전 시간은 3~5분 수준으로, 장거리 운행과 물류 운영에서 시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 과제도 남아 있다.
연료전지 스택의 제조 비용은 여전히 높아 전체 차량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백금과 같은 귀금속 촉매 사용량을 줄이거나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가격 절감의 핵심이다.
또한 수소의 저장과 운송 과정에서의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술도 병행 개발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 전망과 산업 구조 변화
수소차 시장은 현재 초기 단계이지만,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35년까지 글로벌 수소차 보급량은 1,0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상용차 부문에서 수소차 점유율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수소를 핵심 에너지원으로 지정하고, ‘유럽 수소 전략(EU Hydrogen Strategy)’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최소 40GW 규모의 재생에너지 기반
수전해 설비를 구축하고, 대륙 전역에 수소충전소 네트워크를 완성할 계획이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수소사회 비전을 전 세계에 선포했다.
2025년까지 20만 대, 2030년까지
80만 대 수소차 보급을 목표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고 있다.
도요타와 혼다는 수소차 전용 모델과 상용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수소버스·수소트럭 실증 사업도 병행 중이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에 성공한 국가로,
현대자동차의 ‘넥쏘’와 수소트럭 ‘엑시언트’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정부는 ‘수소경제 로드맵’을 통해 2040년까지 수소차 620만 대 보급,
수소충전소 1,200기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 산업 지원을 강화하고,
수소 인프라 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수소차뿐만 아니라 발전,
산업용 열원 등 다양한 분야로 수소 활용을 확산시키는 기반이 될 것이다.
정책 지원과 인프라 구축 과제
수소차 확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여전히 충전 인프라 부족이다.
충전소 설치에는 평균 30억 원 이상의 초기 투자 비용이 소요되며,
안전 규제와 부지 확보 문제까지 겹쳐 민간 기업 단독으로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재정 지원,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고속도로 휴게소, 주요 물류 거점, 버스터미널, 대형 주차장 등
교통량이 많은 지점을 중심으로 수소충전소를 설치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기존 주유소나 LPG 충전소 부지를 활용한 ‘복합 충전소’ 모델은 토지 활용도를 높이고
인프라 구축 속도를 가속화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2025년까지 전국적으로 310기 이상의 충전소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수소 공급망의 안정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수소의 90% 이상이
천연가스 개질 방식의 ‘그레이 수소’이지만,
이는 생산 과정에서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여
생산하는 ‘그린 수소’로 전환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풍력과 태양광 전력을 활용한 대규모 수전해 설비를 설치하고 있으며,
호주와 중동 일부 국가는 청정 수소를 수출 산업으로 육성 중이다.
한국 역시 해외 재생에너지 거점에서 생산한
그린 수소를 액화 상태로 수입해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 표준화는 글로벌 시장 진출의 전제 조건이다.
수소 충전 압력, 커넥터 규격, 안전성 인증 기준이 국가별로 다르면
차량 호환성과 인프라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는
수소차 및 충전소 관련 표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한국·일본·유럽·미국 주요 제조사와 정부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향후 국제 표준이 확정되면 글로벌 수소차 보급 속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성 강화 역시 필수 요소다.수소는 높은 확산성과 인화성을 가지고 있어,
저장·운송·충전 단계마다 다층적인 안전 장치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일본은 충전소 내 안전 센서를 의무화하고,
유럽연합은 충전소 주변의 화재 방지 구역 설정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고압 용기 안전 검사 주기를 단축하고,
긴급 상황 대응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확대 중이다.
결국, 정책 지원과 인프라 구축은 기술 개발 못지않게
수소차 확산의 핵심 열쇠다.단기적으로는 보조금과 인프라 투자 확대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민간 주도의 자생적 생태계가 형성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의 수소 전환은 단기적 난관과 장기적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높은 차량 가격, 충전 인프라 부족,
수소 생산의 청정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표준화,
그린 수소 공급망 확립, 대규모 시장 수요 창출이 필요하다.
수소차는 특히 상용차, 물류, 장거리 운송 분야에서
전기차를 능가하는 효율성과 실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
배터리 무게로 인한 적재중량 손실이 치명적인 대형 화물차,
하루 종일 운행하는 시외·광역버스, 기동성이 중요한 특수 목적 차량 등에서
수소차의 장점은 더욱 빛을 발한다.
향후 10년은 수소차 산업의 ‘골든타임’이 될 것이다.
이 시기에 제조사·부품업체·에너지 기업·정부가 긴밀히 협력하여
기술 개발, 인프라 확충, 정책 지원을 동시에 추진한다면,
수소차는 전 세계 모빌리티 전환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특히, 충전소 접근성을 높이고 수소 가격을 안정화하며,
재생에너지 기반의 청정 수소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수소차 산업은 단순히 자동차 제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소 생산·저장·운송 기술, 연료전지 응용 산업, 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와 탄소중립 달성에도 직접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수소차의 성공 여부는 ‘경제성’과 ‘편의성’이
동시에 확보되느냐에 달려 있다.소비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편리하게 충전할 수 있으며,
충분한 주행거리와 안전성을 경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수소차는 대중교통과 개인 이동수단의 주류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전 세계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지속 가능한 교통 체계 구축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